지현
안녕하세요! 글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어엿한 8개월 차 노동당원이자,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인 지현이라고 합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저번달 소식지에 기고했어야 했는데, 연대 투쟁도 많이 다니고, 최근에 공부를 조금씩 하기 시작해서 늦어졌습니다. 제가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여건이 되지 않아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조금 풀고자 글을 씁니다.
내가 조선하청지회에 연대한 것은
저는 비정규직 노동자이지만, 조선소 하청 노동자는 아닙니다. 아마 조선소에서 일하고 있었다면 서울에 올 일도 없었거니와 당 활동도 잘 못 했겠지요. 그런데 왜 조선하청지회에 가입해서 활동하고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의 노동 환경에 문제의식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문민정부 시기부터 닥쳐온 신자유주의 공세로 인해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생겼고, 1996년 말 노동법 날치기 통과로 인해 회사가 노동자를 정리해고할 수 있게 했습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일명 ‘노조법’)이 노동조합 활동을 온전히 보장하지 못하며 특히 하청 노동자가 원청 사장과 교섭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알고 난 후 저는 투쟁을 결심했습니다.
저희 조선하청지회도 원청 사장 한화오션과 교섭을 줄곧 요구해 왔으나 내란 수괴의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로 인해 가로막혀 왔습니다.
2022년 파업을 통해 세상에 조선소 하청 노동자의 삶이 어떠한지를 알려왔습니다. 유최안 동지가 1평방미터도 되지 않는 공간을 용접해 스스로 가두고 ‘이대로는 살 수 없지 않겠습니까!’가 적힌 문구를 건 사진이 많이 보도됐습니다. 1도크 고공 농성도 했고요. 2024년 임금 및 단체 협상(임단협) 과정에서도 조선하청지회는 성과급을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으로 원상 복구, 노동조합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기 등을 요구했지만 교섭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2025년 1월 퇴진 투쟁이 한창이던 시절 조선하청지회 동지들은 서울 한화오션 본사 앞 단식 농성, 그리고 천막 농성을 했으며, 3월 15일 김형수 지회장 동지는 가장 극단적인 농성이라고 하는 ‘고공 농성’을 개시했습니다. 타 고공 사업장과 다르게 김형수 동지가 올라간 30m CCTV 철탑은 1평도 되지 않는 매우 협소한 공간입니다. 김형수 동지는 그곳에 생필품을 가지고 올라가지도 않았습니다.
‘민주동덕에 봄은 오는가’라는 플랜카드를 가지고 올라갔고, 이후에도 꾸준히 성소수자 권익 향상을 지지하는 각종 선전물 등을 고공에 올리셨습니다. 1평도 되지 않는 고공 농성장에서는 이미 노동자와 여러 사회적 약자간의 연대의 함성이 울려퍼지고 있던 것입니다.
한편 저는 그때 옥돌 동지를 통해 김형수 지회장 고공 농성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이 있으니 함께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마침 저도 ‘보아라 연대의 깃발(일명 연대기)’을 막 수령한 터라 개인 깃발도 올리고, 고공 농성하는 동지께 힘을 보태주고 싶었기 때문에 흔쾌히 동참했습니다.
실제로 고공 농성장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과 무력감에 눈물을 글썽이게 됐습니다. ‘왜 노동자는 살고 싶다고 자신의 목숨을 고공에 바쳐야 하는가.’라는 당시의 물음이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4월 4일 저녁의 광화문 월대를 거닐어 보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진보 3당 농성장을 포함해 많은 농성장이 파면 당일 점심께 철수했습니다. 하지만 고공/투쟁 사업장 공동 농성장만은 그날 저녁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마음이 한 번 요동쳤습니다.
저는 당시에도 ‘탄핵이 인용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싸움은 끝이 아닐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집에 돌아갔는데 이들은 끝을 기약할 수 없는 농성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에 놓였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